절대적이고 상대적인 잡담(28) - 보이는 길 밖에도 세상은 있어

2015. 12. 12. 12:12팀.티파니::(팊사전)/절대적이고상대적인잡담




for a chat XD

There are no rules here. we're trying to accomplish something. - Thomas A. Edison

인생에 규칙이란 없다. 우리는 무언가 이루려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 토마스 A. 에디슨


이번 절/상/잡 은 [2015년 12월] 티파니 홍콩 마리끌레르 인터뷰 를 기반으로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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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가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없고, 공항에 수백명이 몰리며, 온갖 행사에 초대받아 간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소리를 지르고, 소리를 듣는다. 화려한 파티를 즐기고, 숨쉴 틈도 없이 다양한 무대에 오른다. 반짝이는 조명, 수천개의 카메라 렌즈, 기자와 기사와 인터뷰와 잡지와 화보들. 스타일리스트와 매니저와 패션 디자이너와 무대 스텝과 안무가와 보컬 트레이너라는 단어가 가장 익숙한 직업. 무대에 오르는 3분을 위해 3시간을 기다리고 30시간을 안무연습을 하는 일상. 녹화방송과 생방송 사이를 오가며 과거를 살았다 현재를 살았다 미래를 살았다 시간을 매일매일 뛰어넘는 생활. 새벽같이 미용실에 들르고, 일주일에도 여러번 비행기를 타고, 어제는 일본에 내일은 미국에...... 좋은 말로 하면 글로벌한 생활이지만 그녀 역시, 우리와 다르지 않게 하루가 24시간이고 아침 점심 저녁 세끼 밥을 챙겨먹고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잠에 드는, 노래하는 '직업'을 가진, 하나의 온전한 사회인으로서의 그녀, 항상 미래를 바라보고 사는 여자이자 누군가에겐 그 자신이 미래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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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과 계획에 의외로 철저한 한 사람이 있다.

열여섯에 '노래를 하겠다'라는 규칙을 세우고, 지금까지 그 규칙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 사람. 노래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게 될 때까지 집에 가지 않겠다는 규칙, 두가지 언어 속에서 방황하면서도 연습하고 배우고 익히고 물어보면서 자유롭게 생각을 표현할 수 있게 하겠다는 규칙, 느리다고 생각하면 연습을 하고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될 때까지 남아서 하던 규칙, 안무를 몸으로 스스로 할 수 있게 될 때까지 하겠다는 규칙, 힘들어도 자신이 선택했으면 후회하지 않겠다는 규칙. 


어쩌면, 학생이 아니게 되면서부터 독립하는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사회문화 속에서 살아와서 자립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조금 더 익숙했던걸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할 수 밖에 없었던' 타지생활이 오히려 아이를 무수한 규칙 속에 살도록 만들었던 건 아닐까. 하지만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만든 규칙이고, 스스로 살아가기 위한 규칙들이니까 매일매일 이런저런 현실과의 싸움의 연속이어도 계속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다. 목표를 만들고 그걸 이루기 위해 살아가고, 목표를 이룬 다음에 또다른 목표를 만들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잡다한 것들을 제거해가면서 어려움을 이기고 외로움을 이기고 고민거리를 이기고, 그렇게 십년을, 그렇게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한국에서 가수가 되는 것

시대에 기억되어질만한 가수가 되는 것(the singer, will be remembered for generations)

고향인 LA에서 단독 콘서트를 하는 것

멤버들과 해외에 나가보는 것

아시아에서 이름을 알리는 것

노래의 파트가 늘어났으면 하는 것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

뮤지컬 무대에 서는 것

비주얼 디렉팅을 하는 것

작사 혹은 작곡을 하는 것

영어권에서 활동하는 것

헐리우드에 진출하는 것 


그렇게 매일매일 '내일의 목표'를 세워갔던 일상 속에서 이뤄낸 '규칙의 결과들'이 여기에 있다. 

희망사항을 썼고, 어떤 방식으로든 이뤄냈다. 말로 꺼낸 그 어떤 것이든 분명 몇 년 사이에 전부 이루어졌다. 가수가 되기 위해서 외국으로 건너왔고, 원하던 회사의 연습생이 되었고, 공부를 하고 연습을 했고, 마침내 데뷔조에 들어서 데뷔를 하게 되었고, 그룹은 승승장구를 했고, 개인스케줄이 늘어났고, 만천하에 얼굴을 알렸고, 해외로 나가서 공연을 하는 일도 생겼고, 관심이 많던 패션계통으로 방송이나 작업을 하는 일도 꾸준히 하고 있고, 여러 가수와의 피쳐링, 콜라보, 듀엣활동에도 참여했다. 스스로 작사작곡도 하고 연기 연습도 하고 있으며, 유닛멤버에 발탁이 되면서 노래하는 파트도 늘어났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지금 현재에도 멈춰진 것이 단 하나도 없다. 목표를 이뤘지만 그 다음 목표의 문이 열렸고, 그 이전의 목표들도 문이 닫히지 않았다. 그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규칙을 어기는 것"과 "넘어서는 것"은 모두 제 인생의 목표이고, 

사람은 "안전지대"에서 빠져 나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때로는 그런 규칙들 때문에, 지친다거나 규칙을 지키기 위해 또다른 규칙을 만든다거나, 하는걸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걸 하기 위해서 저걸 해야되겠네~ 가 아닌 "해야만해" 라고 생각하게 되는건 아닐까, "하지않으면 안돼"라거나 "지금이 아니면 안돼" 라거나. "아직 때가 아니다" 라던가. 규칙은 '넘어서기 위해' 만들어야지, '막아놓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파니가 늘 관심사로 가지고 있는 패션이나 뷰티에 대한 것들은 모두가 무대에서 아름답게, 멋지게, 빛나게 하려는 것이고 그 무대는 단지 '겉모습을 보여주는'게 아니라 '노래를 하기 위해 올라가는' 공간이다. 파니의 모든 규칙은 '노래를 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다. 


유명 기획사와, 유명 프로듀서와, 유명 작곡가와, 유명 안무가들 사이에서 나온 음악과 안무와 그룹의 인지도. 수없이 많은 콘서트와 방송과 무대. 어쩌면 '가만히 있어도 중간은 가는' 생활이 익숙해졌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뭐라고 할 사람도 없지만. 하지만 끊임없이 '넘어선다'. 고음으로 애드립을 치기도 해보고, 가성을 써보기도 하고, 애절함을 가득 담아보기도 하고, 공기반 소리반으로 노래해보기도 한다. 수없이 많은 노래를 듣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장르의 소리를 듣고 스타일을 연습하고 연구할 수 있는 기회이고, 또한 그것은 스스로의 노력이다.  


한글을 쓰는 것이 아직도 약간 어려움이 있기도 하고, 한국식 스타일의 정서를 표현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작사를 해도 매번 떨어지기도 하지만 그만큼 더 표현해볼, 더 써볼, 더 연구해볼 기회가 늘어난다. 단어의 조합이나 생각의 표현에 대한 규칙을 깨볼 수도 있고, 선입견에 대한 틀을 없애볼 수도 있다. 다양한 가수들과 콜라보를 해서 영역을 늘려나간다. 어쩌면 아직 젊고 인맥이 넓고 남들보다 표현이 자유로워서, 오히려 선입견이나 편견이나 나이제한 같은 것에 대한 "일반적인 사람들의 편견"이 없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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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니는 예능에서 선보일만한 "개인기"가 없었다. 가끔 어설프게 누군가의 흉내를 냈지만 잠깐 웃고 넘길 정도였다.

오히려 가장 강력한 개인기는 '노래하는 것'이었다. 다른 멤버들이 개그맨 흉내나 트롯을 부르거나 할 때, 아이는 진지한 노래를 부르기 일쑤였고, 간단히 음정박자만 틀리지 않으면 그만인 도전천곡은 왕중왕까지 된 전적이 있다. 폭넓고 다양한 장르의 곡을 듣고 불렀다. 그때그때 유행인 장르에 관심이 많고 언제나 '듣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 자신이 노래를 하는 사람이면서 노래를 듣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와중에 어떤 노래를 부르든 자신만의 스타일로 노래를 했다. '복면가왕'에 나오면 1라운드에서 바로 알아들을 수 있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것대로 좋은 일이다. 대중이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다는건, 그만큼 특색이 있기 때문이니까. 파니의 노래를 들은 사람들은 누구든 노래에 "파니만의 무언가"라는 독특함이 묻어있다고 했다. 


'규칙'은 장점을 장점으로 이어나가는 것이다. 장점이 단점이 되어서도, 그냥 무미건조한 '점'이 되어서도 안된다. 오히려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어느순간 장점이 되어 있을 수도 있다. 단점들 사이에서, 혹은 수많은 점과 같은 일상 중에서 좋아하는것이나 잘할 수 있는 것이나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서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나가는 것도 어쩌면 파니가 스스로 세운 규칙의 일종일지도 모른다. '무뎌지지 않는 규칙', '가만히 서 있지 않을 규칙' 같은. 단점이 장점이 되고 그것은 또다른 목표를 위한 새로운 '규칙'이 되는 것이다. 1부터 100까지 단순히 하나씩 숫자를 말하기만 하면 그건 그대로 100까지밖에 없는 숫자의 존재이지만, 1과 100을 더해서 101을 만들고, 2와 99를 더해서 101을 만들어보기도 한다. 그것은 100을 넘어서는 '101'이 된다. 새로운 숫자가 된다. 이것이 반복되면, 그 속에서 곱하기도 할 수 있고 때로는 나누기도 할 수 있게 된다. 그런 반복 속에서 아이디어를 찾고 그 경험을 공유하면서 아이는 스물아홉, 서른을 넘어 계속 앞으로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노래에 마음을 담아 부를 수만 있다면, 이렇게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행복하고 감사한 것.


최근 점점 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지금의 내가 즐겁지 않다거나 어떠한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려 주어도 큰 일이 아니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노래는 꾸미는 것이 아니고 오랫동안 묵혀두는 것도 아니다. 하고싶은 말을 음악에 실어 꺼내는 것이다. 여름에 열렸던 생일파티에서 자작곡에 대한 설명을 꺼내며 파니는 말했다. "지금 느끼는 내 감정을 지금 드러내고 싶었다" 라고. 원래 모든걸 완벽하게 준비한 다음에 쨘, 하고 보여주고 싶었는데, 어쩌면 바로바로 표현하는 것도 무언가를 느낀 순간의 감정을 공유하는 방법도, 원래 준비성이 철저한 타입인 자신의 '규칙'과는 많이 다르지만, 그건 그것 나름대로 괜찮을 수도 있겠다....라고 담담하게 말하던 아이의 모습은, 여태까지 봐오던 파니의 모습에서 조금 더 성장한 것 같아보였다.


"늘 어깨를 들고 활짝 웃는 모습을 보여주다보니 어깨도 아프고..." 언젠가 예능 프로에서 우스개소리처럼 말하던 말. 미소가 예쁜 것이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지만, 어쩌면 그 미소가 아이에게 너무나도 고정된 시각으로만 비춰질지도 모른다. 희노애락이 있는 사람인데, 한 감정으로만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고, 늘 같은 감정의 노래만 부를 수는 없으니까. 감정을 살리고,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다는걸 차츰 깨닿는 나이가 되고, 경험자가 된다. 여태까지 '채우기 위해' 달려왔다면, 넘치는 것들을 버리고 정리하면서 다시 채울 공간을 만들어가는 상태로 달려가는 연습도 필요하다.     


보이는 길 밖에도 세상은 있어 

언제나 식지 않는 마음이 있어 

자유로운 내 뜻을 막을 순 없어 

- 서태지와 아이들, Taiji Boys 中


보이는 길이 아닌 곳에도 분명, 공간은 존재한다. '노래를 할 수 있는 공간에서 노래를 부른다' 라는 규칙만 지킨다면, 그 어느 길에 서더라도, 파니는 행복할 것이고 목표를 이룰 것이고, 미래로 나아갈 것이다. 빨리 달리는 고속도로가 있으면, 그 옆엔 천천히 달리는 국도도 있고, 수많은 샛길과 고가도로와 출구가 존재한다. 음악에 대해서 식지않는 마음만 있다면, 그 곳이 길이고 그곳이 공간이다. 언제나 뻗어있는 길. 그리고 그 길을 걷기 위한 수많은 규칙들이 존재하지만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힘. 

보이는 길을 걷는 아이와, 보이지 않는 길 밖에서도 어디서나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 지금의 우리.

노래해줘서 고맙고, 너의 목소리를 들려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