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이고 상대적인 잡담(34) - 더 선명해진 느낌의 지금 우리
Absolute & Relative : For a Chat
절대적이고 상대적인 잡담
경험을 현명하게 사용한다면, 어떤 일도 시간 낭비는 아니다. - 오귀스트 르네 로댕
2022년. 소녀시대력(?) 15년이 흘렀습니다. 5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고 수없이 말해왔는데, 기다려왔던 날이 드디어 찾아왔습니다.
그동안 즐거웠던 날도, 가끔은 기쁘지 않았던 날도, 얼른 흘러가버리길 바랐던 날도 있었습니다. 내가 아니라 너를, 이렇게 보고 싶고 목소리가 듣고 싶고 그랬던 날들이요. 파니에게나 저에게나, 가끔은 가벼운 우울감에 빠지기도 했고 또 어느 때는 누군가의 사진에서 익숙한 모습을 발견하고 우리가 언젠간 공식 석상에서 다시 만나겠지? 란 꿈을 꾸기도 했고. 여러 가지 감정이 휘몰아쳤던 지난날을 되돌아 봅니다. '5년'이라고 단순히 기록적으로는 말할 수 있겠지만 사실 파니는 단 한순간도 쉰 적이 없었어요. 미국으로 돌아가고서도 라방도 여러 번 했고 장기간의 콘서트 투어도 했고 이런저런 행사에 출연하고 보이는 장면에서도 보이지 않는 시간에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만약 모든 걸 놔버리고 평범한 아이로 돌아가겠다 선언했더라도, 파니의 인생에 우리가 뭐라 할 말은 없겠지만, 서로 간의 무언가 지지할 점을 차분히 알아봐 주고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지난 5년은)안보여져도 내가 꾸준히 도전하고 해 보고 싶고, 나를 위해서 보냈던 시간. 우리가 다시 모였을 때 '내가 좀 더 '사람'으로서 성장이 되어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제일 컸는데, 사실 지금이 더 건강해진 것 같아. 정신적으로도 그렇고. 고민도 많았고 길을 잃었나 싶을 때도 많았지만 우리가 이렇게 8명이 다시 모인걸 보면 (공백이)다 이유가 있었고, 5년동안 그런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다시) 모였을 때, 더 선명해진 느낌.
- 소시탐탐, 써니와의 대화 중.
컴백일이 밝았습니다. 그리고 연이어 예능을 출연하고 라디오에서 조잘조잘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음악방송 대기실에서의 일상이 카메라에 담기는 요즈음입니다. 우리는 그저 하나의 너의 웃음이 더 보고 싶고 카메라에 잡힌 표정 하나하나에 마음이 놓이는 그런 오늘입니다. 늘 하던 대로 익숙하게 프로그램 촬영을 하고 광고에서 얼굴을 보이며 커피숍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소리에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이 아, 소시 노래 넘 잘하고 요즘 너무 이쁘지 않냐, 역시 소시가 또 소시했네. 란 소리에 괜히 내가 더 으쓱거리게 되는 그런 날. 여전히 새벽 촬영은 변함없고 빠르게 돌아가는 방송국 라이프 역시도 바뀐건 없지만, 아주 크게 바뀐 건 있죠. 이제 상암을 가면, 여의도에 가면 '소녀들'을 볼 수 있습니다. 다같이 손을 잡고 응원 구호를 외치는 컷이 공계에 올라오는 그런 날입니다.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귀여움을 받고 있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희망을 주고, 더없이 많은 사람들이 소녀들의 하루하루를 반가워해주고 있다는, 이 사실이요.
고맙게도 한국에 돌아와 쇼케이스와 콘서트를 하고, 인터뷰를 하고, 뮤지컬 배우로, 드라마 배우로, 광고모델로 다양한 활동을 하느라 5년은 공백이 아니라 아주 빡빡하게 짜여져 눈코뜰 새 없이 돌아간 시간이었지만 사실은 “다같이 노래하는” 모습도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내 피부에 스며져 들어왔던 소녀시대의 음악, 그 안에서 노래하고 음악을 듣고 음표를 그리며 집중하는 모습, 너를 아껴주는 사람들과 깨알같이 서로 웃고 떠들며 세상에서 가장 편한 미소를 짓던 그 모습을 볼 수 있겠지, 하고 막연하게 바라왔던 날들이 어제에 그리고 오늘에 이렇게 빛나고 있네요. 각자가 여러가지 경험을 하면서 서로가 있었던 시간과 없었던 시간에 대해서 많은걸 깨달았다고 하는 소녀들의 인터뷰가 새삼 우리 마음에 작은 파장처럼 다가옵니다. 시끄럽고 요란했지만 그만큼 익숙했던 공기가 그립기도 하고, 스스로 프로페셔널이 되어야 했지만 그만큼 더 크고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게 되었던 일들을 바라보면서, 그 안에서 언제나 별다를바 없었던 소녀들의 여전한 모습도 발견했습니다. 여덞명이서 무대에서 손을 모으는 그 모습을 보려고 이렇게 달려왔던 순간들, 그저 그게 너무 보고싶었던 것 같아요. 장난을 치고 놀리기도 하지만 사실은 가장 세심하고 서로의 칭찬도 제일 잘 해주고, 서로를 마음 한구석에 두고 있었던 사람들. 여러가지 사정으로 소속이 달라지는 동안 어쩌면 많은 것을 잃을 수도 있겠다란 생각도 들었지만 아직 여태까진 잃어버린게 단 하나도 없는 것 같네요(오히려 더 능숙해진 장난끼만 발견함 - 웃음)
어제의 무대와 카메라에 비친, 기사에 실린 사진과 영상을 들여다봅니다. 에너지가 넘치고 환하게 웃는 얼굴. 이런 표현을 위해 사는 직업이지만 이 활력을 보고 즐거워하는 사람이 여기 있습니다. 사실 저는 파니보다 더 먼저 세상을 걸어온 사람인데, 저보다 어린 이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받아서. 아이가 오길 무작정 기다리고 있었던 것뿐은 아니었을까. 나는 받기만 했지 뭔가 도움을 주진 못했을까. 가끔은 그런 마음이 회오리처럼 저를 감싸기도 했던 것 같아요. 괜한 걱정이 아니어도 충분히 잘 이겨내고 있을 텐데 내가 뭐라고. 어쩌면 내가 아직도 너무 어제의 시간 속에 갇혀있었던 건 아닐까, 소녀들이 마냥 예쁘고 멋진 삶을 살아주기만 내 기준에 맞춰 바라보는 것은 아니었을까, 돌아보기도 합니다. 소녀시대가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우리도 분명 지난 세월 동안 흐름을 타고 있었죠. 저의 현실은 소녀시대 못지않게 힘들고 어려운 날들의 연속이었지만 노래를 듣고 얼굴을 보면서 이겨내 온 시간의 틈새도 분명 있었습니다. 파니의 인터뷰처럼 명상을 하거나 ASMR을 들어보기도 하고 여러가지 취미를 가지며 마음을 비워보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조각난 부분을 채워보려는 노력을 해왔던 것 같아요. 파니도 여러 인터뷰를 통해 명상을 하고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고 했었죠. 마음을 비우고 주변을 돌아본 시간이 존재해서, 그 시간을 알차게 챙겨와서 지금 이렇게 단단한 너를, 만날 수 있게 되었네요. 가끔은 모래의 성같이 아슬아슬해 보이는 시점도 있었을 지 모르겠지만 이젠 벽돌로 된 견고한 벽이 된 사람으로서, 마주봅니다.
지난 시간을 열심히 지켜온 저 스스로에게도 칭찬의 말을 해주고 싶어요. 여태 있었어? 이런 말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 아직도 변하지 않고 여기에 있어. 라고 대답해 줄 수 있도록 한 나를. 나아닌 다른 사람의 단독적인 인생에 내가 끼어들 수 없고 그럴리도 없지만, 파니는 우리에게 정말 많은 영향을 미쳤어요. 누군가를 위해 이렇게 글을 쓰게 하고 누군가를 위해 어딜 가야지, 좋아하는 걸 사야지, 이렇게 행동해야지 같은 소소한 일상들을 하루하루 레고처럼 혹은 퍼즐처럼 쌓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고마워요. 파니는 모르고 있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너는 내 평범하고 특색 없이 보이던 길에 이런 길로도 갈 수 있다, 이렇게도 볼 수 있다 말해주는 표식 같았다는 것을. 그저 내가 너를 좋아하는 마음이 절대로 부끄럽지 않고 스스로 삶을 만들어 나갈 너를 부담스럽게 만들지 않겠다는 말을, 조용히 가슴에 담아봅니다.
파니가 작사한 곡 중에 not barbie라는 곡이 있어요. 나는 인형이 아니고 나대로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담은 가사인데, 우리 역시도 여기저기 끌려다니기보다는 각자의 의지로 발을 제대로 디딜 수 있는 힘을 길렀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소녀들이 우리에게 음악에 실어 전하는 메시지겠죠. 20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각자 스스로의 탑이 생겨나고 원하는 대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생겼습니다. 높든 낮든 넓든 좁든, 진짜 스스로 개척해 나아가는 길이에요.
혹자는 아이돌은 스쳐가는 것이라고 하지만, 우린 아직 우리의 미래를 모르잖아요. 내일 어떤 사이가 될지 모르지만 적어도 어제와 오늘은 너를 지키고, 너와 함께 해서 소중한 날이 되었다는 사실이 내 일상 속의 작은 행복이 된다면, 네가 나를 스쳐갔던 순간들 만큼은 충분히 행복하고 의미있었다고 생각해보려고요. 요즘은 매일같이 기분이 너무 좋아요. 거친 시간의 강을 지나 미지의 세계를 통과해 광야에 이르기까지 걸린 시간과 그 여정. 파니가 뭔가를 하려고 하면 그건 분명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보여줬었으니까. 『좋은 타이밍에 진심을 담아 보여주겠다』 는 약속도 결국 지킨 게 되었잖아요. 그래서 이번 활동이 끝나는 이후의 삶도, 우리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겠죠.
이젠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아서.